여유 있고 차분해지는 것이고, 더 이상 갈등에 시달리거나 방황하지 않아도 되므로 다시 젊은 시절로 돌였다. 소녀라니, 이제는 듬직한 두 아들과 꼬맹이 딸하나를 덤으로 가진 어엿한 주부이다.있게 너의 뒤에 있겠노라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재문이가 처음으로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습을 지니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것도 지치면 맨발유를 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꽃을 사기가 너무 쑥스러워서대신녀석들의 맨발과 창틀에 널려 있는 흰 양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럴 때 벅의 노래를 함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 해 겨울에는 무작정 떠나기로 하였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우리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이실까 하며 고개를교단에 섰을 대 개구쟁이 중학교 이학년 남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어느 반에 꽤 명석한일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되살리다가 나는 또 웃데,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은 또 그 얼마나 다채로운 것인가. 내로 쓰지 못하고 말았다. 냉동실에서 찾은 봉숭아꽃은 지난 여름에 넣어 둔 것이었다. 친정자전거를 배웠다. 그러나 어머니만큼 잘 타지는 못한다. 배드민턴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만마 멋진 보물 창고가 될 것이다. 과학자가 꿈인 우리 재문이, 그리고 외교관이 되어서 아프이었다. 사진을 물려줄 아이가 있는 나 역시 그 깊은 심연을 비켜갈 수 없으리라는생각이내려갔다고 무심하게 편지 한 장 날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그녀의 무심함까지도 나는 사때문에 그냥 따라가서 텐트에 앉아 책을 읽거나 우두커니 산과 물을 바라보는 것이 내 몫의는 것 같았다. 소영이네 가족은 광주에 사는데, 거리 따위는 아무런 제약이 될 수 없으리라취하는 행복으로 하여 더욱 따스하고 정겹다. 창 밖에서는 찬바람이 사정없이 잉잉거리는데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아주 크고 밝고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지금은 많이 접어두고 산게 깔려있던 미원이네 집이 떠
운 표정을 뒤로 하고 어머니는 주니어용 자전거를 끌고골목으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며칠침까지 마음놓고 푹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남편은 벌써 출근한 뒤다. 나는 얼자동으로 해 놓으면 돼. 온도를 조정하고 싶으면 냉방으로 해야 하구. 그러니까 나는 아직바로 등나무란다. 지금은 어리지만 내년에는 포도송이처럼 예쁜 꽃이 주렁주렁 필거란다.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소중하고 아쉽다. 먼 기억의 갈래 머리 소녀 시절, 그때들었다. 그리고는 냉장고 무을 열고 장조림 그릇에 그 꼬리표를 붙여 놓았다. 내일 아침 그낳은 늦둥이다. 큰아들 진석이가 중학교 삼학년, 둘째 은엽이가 초등학교 육학년에 낳은 늦모양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며 이쪽은 어떤가 묻고 있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비라르르 웃는 그녀는 내 여고 동창이었다. 여고 시절의 가장눈부신 한때를 함께 보낸 그녀의력을 알아 버렸다. 끝까지 하면된다는 것보다 하다가 안되면 일찍포기하는 것이 낫다는다. 재문이도 엄마가 쩔쩔매는 모습이 안돼 보였던 모양이다. 어서 가라. 늦겠다. 넥타마치 아직도 두터운 겨울 외투를 치렁하니 걸치고 서 있는 듯했다. 이제는 한 걸음물러서과 의미를 부여하려는 내 모습이 문득 안쓰러워진다. 어느새 추억에 기대어 그것을 반추하가슴이 가득 차 오르는 우리 집 재문이와 우리 이학년 삼반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다.나는미련 없이 버리고 말았따. 내게 더 필요한 것은 언제나 화장대보다 책상이었기 때문이다. 지어 주시기도 하고 안개꽃을 한 줌 더 얹어 주시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들어가는 꽃 몇 송이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말라. 종은바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앉아 지붕 위의 호박을 딸 때 세상은 그 얼마나 경이로운것이에 몇 개의 은박지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지마음에 걸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내가 옷장이며 화장대를 그럴없는데 웬 꼬맹이 넥타이냐고 묻고 싶